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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2025.4.19.] 그 시절에 이런 그림이?…한국 초현실주의, 비주류 자처한 진짜 예술가들, 문소영 기자님

언론보도

by 구로 김영환 2025. 5. 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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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이런 그림이?…한국 초현실주의, 비주류 자처한 진짜 예술가들

“1960~70년대 우리나라에 이런 그림이 있었다고?” 지난 17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개막한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 전시는 놀라움을 자아내는 그림들로 가득했다. 몽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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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남(마나베 히데오)의 '새들의 산아제한'(1978). 유족 소장. 문소영 기자

 
“1960~70년대 우리나라에 이런 그림이 있었다고?” 지난 17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개막한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 전시는 놀라움을 자아내는 그림들로 가득했다.

몽글몽글한 핑크색 형체들이 동굴 종유석처럼 달려 있는 박광호(1932~2000)의 유화 ‘종유 환상’은 그 형체들이 인간의 가슴과 엉덩이를 연상시켜 에로틱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성적이지는 않고, 또 전체적으로 기묘하면서 조형적으로 아름답다. 설명 없이 보면 동시대 작가의 작품으로 오해할 정도로 현대적이다. 지난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세계적인 작가 니콜라스 파티의 전시작 중 비슷한 느낌의 그림이 있었다. 그런데 박광호의 그림은 반세기 앞서 그려진 것이다. 그것도 추상화와 한국적 모티프의 구상화만이 각광받으며 주류를 이뤘던 70년대 한국에서 말이다.

 

박광호 '종유 환상'(1970년대) 유족 소장. 문소영 기자

 
신영헌(1923~1995)의 1960~70년대 그림에서는 대표적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영향이 강하게 보인다. 특히 달리의 ‘편집광적 비판 방법’, 즉 하나의 이미지가 이중의 다른 이미지로 보이게 하는 기법을 적극 응용했다. 신영헌의 ‘신라송’ ‘우국(임진록)-사명당’ 등은 민족 역사를 이중 이미지로 표현한 그림으로 ‘달리 기법을 노골적으로 모방하면서도 초현실주의의 초국가적 자유로움과 위배돼 정부 주도 민족주의에 편승했다’는 냉소를 받을 수도 있는 작품이다.
 

신영헌의 유화 ‘신라송’(1968).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신영헌의 '무제'(196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문소영 기자

 
그러나 함께 전시된 신영헌의 초기 작품을 보면 그가 당대 가장 ‘핫한 미술’이었던 앵포르멜(비정형) 추상화에 뛰어났으며 그럼에도 비주류인 초현실주의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즉 기회주의 작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추상주의적 아카데미즘을 지양”하는 신작가협회에 가입했다. 그 후 극소수의 미술계 관계자, 종교인과만 교류하며 작업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달리식 이중 이미지를 사용한 그림 중에도 황폐한 풍경 속에 끊어진 절벽이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무제’는 실향민인 화가가 분단의 아픔을 전달하는 작품으로 설득력이 있다.
 

김욱규 '제목 없음'(1960년대 중반~1970년대 초) 유족 소장. 문소영 기자.

 
한편, 깨진 창문에 여러 곤충이 붙어 있는 가운데 남녀의 얼굴이 어렴풋이 비치는 김욱규(1911~1990)의 수수께끼 같은 그림은 공포 스릴러 영화 포스터로 영감을 줄 만하다. 파리의 부티크 쇼윈도에서 본 장갑과 마네킹을 묘사한 김종하(1918~2011)의 ‘색장갑’은 현실의 한 풍경이면서도 왠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언캐니(uncanny)한 느낌을 잘 살렸다.
 

김종하의 '색장갑'(195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들의 작품은 무국적이다.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문에서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이 말한 “이성에 의한 모든 통제에서 벗어나 미학적·도덕적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의 흐름”을 따르기 때문이다. 전시를 기획한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그렇기 때문에 ‘한국적’ ‘민족적’인 것에 초점을 둔 그간의 한국미술사 연구에서 조명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이 활동한 시기(1950~80년대)에 이미 초현실주의는 과거의 역사로 여겨지는 상태였다. 때문에 이들은 함께 모여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끌 여건을 갖지 못했고, 각자 흩어져서 고독하게 작업에 몰두했다.”

박 학예연구사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초현실주의는 흔히 꿈·무의식·성적 욕망을 나타내는 예술로 여겨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을 기존의 틀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혁명 혹은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초현실주의는 (인상주의나 입체주의처럼) 화풍·형식의 전환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의 전환이자 하나의 태도이다.”

 

황규백의 메조틴트 판화 ‘분홍색 손수건과 달걀’(197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그는 또 ‘국민 화가’ 이중섭의 그림도 분방한 욕망과 환상을 표현한 그림이 많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 맥락에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 전시는 제1부에서 이중섭을 비롯해 이쾌대·천경자·박래현 등 우리가 잘 알지만 초현실주의 작가로는 생각지 않았던 작가들의 초현실주의적 면모를 재조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2~4부에서는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6인의 작가들을 다룬다. 앞서의 작가들 외에 한국계 일본 작가 김종남(1914~1986)과 김영환(1928~2011)이 포함된다.
 

김영환의 '소와 여인'(197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문소영 기자

 
박 학예연구사가 6~7년 전부터 기획해온 전시로 오랜 기간에 걸친 기획이 돋보인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대중에 처음 선보이는 것으로 신선하다. 또한 같은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막스 에른스트나 조르조 데 키리코 등 서구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영향이 너무 강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독창적이고 놀랍도록 21세기적인 작품도 있어 이들의 다양한 실험과 분투를 알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이들이 당대 주류에 끼지 않고 비주류를 자처하며 작품에만 몰두한 “진짜 예술가”였다는 사실이다. 박 학예연구사는 “가족의 희생도 컸다”며 “유족들이 언젠가 재조명 받을 날이 있을 것을 굳게 믿으며 작품을 보관해 왔기에 이번 전시를 열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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