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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현대미술의 형성 과정과 단체들(강진희)

언론보도

by 구로 김영환 2025. 4. 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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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강진희님이 작성한 글입니다. 초기 현대미술의 형성 과정과 단체들 1930년대 후반, 일본 모더니즘 회화운동의 주변현상으로서의 추상미술이 젊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면서 한국 추상미술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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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현대미술의 형성 과정과 단체들



1930년대 후반, 일본 모더니즘 회화운동의 주변현상으로서의 추상미술이 젊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면서 한국 추상미술의 발단을 이룸
· 김환기
한국 추상 미술의 선구자격
론도(1938), 창(1940) 등의 기하학적 양식의 추상화 제작
1960년까지 추상보다는 구상성이 강한 서정주의적 조형표현에 몰두
그 후 파리와 뉴욕 시기를 거치며 민족의 정서가 내재된 완성도 높은 추상화 제작
· 유영국
대상을 해체한 단순 명확한 조형질서를 바탕으로 나무판으로 된 기하학적 구성의
부조화 시도, 극도로 절제된 색채감정을 바탕으로 한 그의 회화세계는 구성주의나
순수주의 같은 일련의 기하학적 추상과 그대로 밀착되기도 한다.
· 이규상
40년대 초, 김환기와 유영국의 구성주의적 추상화풍에 비해 기호적인 추상작업을 시도하며 또 다른 추상화풍을 간직
-> 초기추상미술의 움직임은 광복 이후 신사실파나 모던아트협회 등을 중심으로 발전
50년대 초, 민족분쟁이 끝난 후 서방세계로부터의 경제적, 문화적 영향은 전쟁이 끝난 후의 허무적이고 피폐한 정신사조의 유행과 맞물려 창년 작가들에 의해 거칠고 물질감 두드러진 앵포르멜 양식과 격정적 감정의 추상표현주의 화풍이 등장. 
1950년대 후반~60년대, 다양한 추상화와 추상조각이 만들어짐
· 서양화단   
초기 양식적 모더니즘, 서정적 양식주의, 신조형주의, 추상표현주의 
1957, 4
모던아트협회 창립(한국 추상미술사조 중 가장 먼저 창립, 60년대 중반 해체)
당시 40대의 기성 작가들로 분명한 재야적 의식을 가지고 결속하여 조형 양식
적으로는 구상과 추상의 과도기적인 변모 스타일을 보여주는 양식적 모더니즘
유영국, 이규상, 한묵, 정점식, 문신, 정규, 김경, 박고석, 황염수 
1957, 5
현대미술가 협회(파리를 중심으로 파생된 앵포르멜 운동을 뒤늦게 접속하려함)
당시 결성된 단체들 중 가장 전위적으로 미술이념과 행동윤리를 결합시킴
김창렬, 박서보 -> 62년, ‘악뛰엘’이란 새 명칭으로 통합  
연합전에 하인두, 장성순, 이양로, 조상화, 조용익, 나병재 등 작가로 참여 
창작미술협회(보수적 성격의 국전 출신 중견작가들의 그룹, 서정적 양식주의)
서정적 반추상 내지 추상적 양식화를 시도하던 작가들 
장리석, 황유엽, 류경채, 최영림, 이준, 고화흠, 박항섭, 박창돈, 이봉상, 홍종명  
 1957, 6
신조형파(현대미술에 대한 새로운 조형탐구에 힘씀, 1959 해체)
화가와 건축가 디자이너들의 구성체로 바우하우스 이념의 구현이라는 종합적인 조형운동을 지향하던 단체 
조병현, 변영원, 변희천 + 황규백, 김영환, 정건모, 김관현, 이상순, 손계풍, 이철이, 김충선, 이철, 이상욱   
1957, 11
현대작가초대전(조선일보 주최)
김병기, 김영주, 한봉덕 등 그룹 성격이 아닌 개인적 성향으로서 활동한 작가들에 의해 당시 권위주의의 대명사였던 국전에 대항해 현대적 미술가들의 집합된 힘을 보여준 전시회 결성 
· 동양화단 
1957
백양회(국전에 반기를 들고 국제전시와 활발한 작품 활동을 기반으로 당시 동양화의 양식적 흐름을 현대적 경향으로 탈바꿈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함) 
김기창, 이유태, 이남호, 장덕, 박래현, 허건, 김영기, 김정현, 천경자
1960
묵림회(64년까지) 
서세옥 + 박세원, 장운상, 장선백, 민경갑, 이영찬, 정탁영, 송영방, 안동숙, 신영상
-> 50년대 말의 집단적 추상미술운동은 전쟁체험에서 나오는 뜨거운 실존주의적 격정이라는 정신적 배경에 있어서는 2차대전 후 유럽의 ‘앵포르멜’과 유사한 분위기가 있지만 표현양식에 있어서는 동양의 사상과 필법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가까운 형태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뜨거운 추상회화운동이 촉발하게 된 배경에 작용한 내부적인 요인: 당시 젊은 세대들이 겪은 전쟁 후의 황폐한 정신상황과 암울한 시대적 현실을 타파하고자 한 시도, 기존 작가들이 추구하던 미학이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점 등.
국전에서도 추상, 반추상 경향의 작품들이 입·특선을 차지하게 되는 개혁이 일어남: 50년대 파리 화단에서 활동했던 김환기, 김흥수, 권옥연, 이세득, 손동진 등이 귀국해 서양화부 심사에 참여하면서 급격히 변화함.
1960년대 
50년대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 저항적 아방가르드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시작한 추상표현주의 운동은 1960년 4.19혁명과 함께 등장한 제 2세대들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4.19혁명의 기세를 타고 60년 10월 덕수궁 담벼락에 오백호 천호 크기의 추상화 캔버스들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로 당시 미술대학의 분위기가 추상 일변도로 변해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추상표현주의의 열풍은 60년대에 오면서 벽전, 60년미협, 악뛰엘로 이어져 전체화단의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다. 이런 추상표현적 화풍은 서양화로부터 비롯하여 한국화 조각에까지 확산되어 6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 조각부문
선전을 통해 활동했던 작가들과 김종영, 김정숙 등이 50년대 후반부터 현대적 흐름 수용
특히 서울대 김종영과 홍익대 윤효중이 한국조각계 두 흐름 주도.
1963. 7 낙우회(서울대 출신 조각가들)
김봉구, 신석필 + 남철, 엄태정, 전준, 최병상 
1963. 12 원형회(중견작가들 주축 + 후에 청년작가 영입, 비중 있는 조각단체로 등장)
김영중, 전상범, 최기원, 김영학, 김찬식, 이운식 + 박종배, 이종각, 이승택, 오종욱
한편, 윤영자, 최만린, 최종태, 최의순, 정관모 등이 국전에서 수상하며 반구상양식과 추상양식의 현대조각 작품들을 보여주며 조각계의 현대적 흐름에 동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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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해방 이후 미술 분야의 가장 큰 변화는 교육의 변화와 서구미술과의 직접적인 접촉이라 할 수 있다. 초, 중, 고등학교의 미술교육이 쇄신되고 미술가를 양성하는 미술대학 미술과들이 생겨났고 이를 계기로 미술은 급속도로 보급되고 미술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46), 홍익대학 미술과(49) 등이 창설되어 5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교육받은 젊은 미술가가 배출되기 시작, 이들이 서구 현대미술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2>모더니즘의 계보는 해방 이후 최초의 순수조형이념적 결속을 표방하 단체로서 1948년에 결성되어 53년까지 지속된 ‘신사실파’(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장욱진)에서 시작하여 모던아트 협회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57년 결성된 모던아트협회는 신사실파에서 활동한 작가인 유영국, 이규상과 국전 창설 이후 제야로 활동해온 한묵, 황염수, 정규, 박고석과 지방에서 활동했던 문신, 정점식, 김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이미 전전부터 일본의 신감각 운동 대열에 참여했거나 또는 후기 인상파 이후의 변혁적인 미의식을 지니고 있던 작가군으로 우리나라 모더니즘 1세대들이다. 또한 모던아트협회가 결성될 무렵 파리에 가 있었던 김환기를 비롯하여 김영주, 김병기, 함대정 등도 초기 양식적 모더니즘 작가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김환기는 자연에서 출발하면서 대상을 점진적으로 요약해 들어가는 구성적 추상의 방법을 보였고 해방 이후로 오면서 다시 자연주의적 내용이 짙은 조형세계를 펼쳐보였다. 50년대 작품에는 학이나 항아리 같은 전통적인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해방 이후 화단에서 유행하였던 ‘민족적 전통’에 대한 소재주의적 해석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3>유영국 역시 기하학적 구성패턴에다 자연적 이미지를 굴절시킴으로써 해방전의 절대적 구성에서 벗어나고 잇다. 

4>이규상은 해방 전부터 시도한 기호에 가까운 기본형태들로 구성해 나간 작품들을 지속해 보여 어떻게 보면 가장 지속적으로 추상작업을 해온 작가라 할 수 있다. 이들 추상작가를 제외하면 모던아트협회 구성원의 조형 기조는 후기인상파에서 입체파에 이러는 조형적 체험에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5>한묵은 50년대 모더니즘 계열에서 작품 면이나 이론적인 면이나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경우로 극히 평범한 일상적 소재범주를 추구하고 있으면서도 논리적인 구성패턴과 다감한 색채의 세계를 펼쳐보였다.  

6>문신 역시 한묵과 유사한 풍부한 색채와 구성적인 패턴을 추구했는데 파리로 진출하면서 조각으로 전환하였다. 그의 조각이 갖는 심메트리컬한 구성기조는 회화세계의 연속성이 엿보인다.  

 7>정규, 정점식, 김경도 단순하면서도 견고한 구성적인 형태 해석을 기조로 향토적인 소재취향을 보였다. 

8>박고석, 황염규는 조형적 문맥으로 본다면 후기인상파에서 야수파에 이르는 조형적 기조를 가지고 형태를 요약하고 단순화시켜나가고 있다. 모던아트 회원은 아니지만 김영주는 서체적 분방한 필선의 작품을 보였고, 김병기는 후기 큐비즘의 분석적 기조에서 추상에로 이행해 가는 경향을 띠었다. 이세득은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격렬한 필의에다 고유한 색채감정을 혼합시킨 작품을, 함대정은 후기 큐비즘의 화풍을 보여주었다. 

9>해방 이후 ‘국전’(49)이 창설되는데 이는 관립전으로 일제의 ‘선전’을 답습한 구시대적 유물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나 해방 이후 화단 활동은 국전에 집중되었고 1950년대 화단의 분위기는 조형이념에 의한 결속보다는 국전을 둘러싼 화단정치가 더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전을 둘러싸고 분규가 심화되어 56년 급기야 대한미협(윤효중을 수장으로 하는 홍대파가 주도)으로부터 한국미협(장발을 수장으로 하는 서울대파가 주도)이 분리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는 서울대파 대 홍대파, 아카데미즘 대 모더니즘, 구상 대 추상 등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세력화하여 일어난 분규였다.  

10>해방 후 창립된 1회 국전에서 <폐림지 근방>49 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국전을 통해 뚜렷한 작가적 성장을 보인 류경채는 지속적으로 서정적 모티프에의 탐닉을 보여줌으로써 60년경부터 <도심지대>60, <풍화>62에서 보듯 서정적 추상화로 진행되어 자연 질서를 투시적으로 표현하는 추상화로 나아갔다. 

11>최영림은 초기에는 <여인일지>59에서 보듯 구성적인 화면에 흑백의 대비가 강한 색채를 구사하여 일종의 상징적인 세계를 확립해 나갔으며 60년대 후반에는 설화시대를 예고하는 상징적인 공간탐구의 시기가 지속되었다.  

12>고화흠의 <작품>64, 박항섭의 <어족>59, <어족>64 등은 자연주의적 모티브를 선택하고 있으나 대상을 부단히 감각적으로 해석하려는 서정적 구성주의를 지향해 보였다. 

13>이봉상은 <산>56, <산과 호수와 나무>62 등에서 보듯 향토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하면서 감성의 세계인식에서 인상적인 조형공간을 설정했다. 그는 작품의 경향으로는 서정주의에 속하지만 새로운 미술운동의 산실 역할을 한 ‘안국동미술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박서보 등 앵포르멜 운동을 전개한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집단의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홍종명 역시 표현적인 색채 구사로 향토성 짙은 소재를 다루었다. 

14>신조형파를 중심으로 한 작가들뿐 아니라, 김흥수, 권옥연, 문학진, 변종하 등 해방 이후 새로이 조형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독자적인 세계를 추구한 작가들을 신조형주의 계열로 분류. 지성적이고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추구하여 개성적인 추상 반추상 양식을 일구어낸 작가군이다. 

15>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재야의 의식을 한층 고취하면서 점차 기성 보수적인 미술세계에 대한 반보수적 진취적 미술의 거점으로 그 자리를 굳혀갔다. 

16>개성적인 반구상적 조형양식을 구축해간 김흥수 같은 작가는 향토적인 모티프와 관능적인 누드의 소재를 구축적인 마티에르와 다채로운 색채로써 구사한 새로운 감각의 구상화를 시도하여 그 독자의 방향을 모색하였다. 

17>이번에 출품된 <절규>58, <문>61 에서 보듯 신비감을 자아내는 회색톤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반구상 세계를 추구. 문학진은 <탁상위의 정물>, <자전거에 부딪힌 운전수>58 등 감각적 색채와 마티에르로 개성적으로 입체파적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갔으며 시적이고 동화적인 서정세계를 보여주는 변종하는 초기작 <우화>57 2점을 통해 입체파적 형태해석과 시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18><생태>60, <단상>60 을 보여주는 이세득은 앵포르멜 운동이 거세어질 58년 도불하여 4년간 유학생활을 함으로써 일정한 그룹 활동이 아닌 독자적인 분위기의 서정적 추상주의를 확립해나갔다. 

19>‘60년 미협’으로 불리는 이들은 서울 미대 출신의 윤명로, 김종학, 김봉태, 손찬성, 최관도 등 12명으로 모두 안국동미술연구소 출신이었다. 이들보다 1주일 앞서 덕수궁 돌담길 벽에 제일 먼저 벽전을 가진 사람들은 서울미대 재학중의 유황, 박흥도, 김익수, 이동진 네 사람이 있었으나 그들은 수일 후에 있는 60년 미협의 대대적인 시위 속에 묻혀 버렸다.

20>앵포르멜 운동으로 불리는 전후 추상표현주의 화풍의 중심에는 가장 반국전, 반아카데미즘 의 선두에서 가장 전위적인 활동을 보여준 현대미협과(57) 60년미협(60), 악뛰엘(62)의 구성원들이 위치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전위적인 미술운동집단으로서 일정한 세력을 가지고 60년대 초반을 전후한 한 시대의 화단을 휩쓸었던 화풍이므로 우리 현대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할 것이다. 여기에는 박서보, 김창렬, 하인두, 장성순, 나병재, 정창섭, 조용익 등 초기 선구자들뿐만 아니라 이들의 후배 세대인 김형대, 김봉태, 윤명로 등 60년미협세대들이나 악뛰엘 멤버들이 이 그룹의 중심에 설 것이다. 그리고 당시 대학의 분위기는 거의 추상표현주의 화풍에 동조하여 화풍을 바꾸었던 작가들도 있는데 이들은 이 시기가 지나면서 자기 나름의 화풍으로 되돌아가거나 독자의 화풍을 형성하였다. 이준의 <월야>60 나 그리고 당시 해외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유학생들이 많아졌는데 많은 작가들이 미국이나 프랑스 등지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 정착하거나 아주 오랜만에 국내 화단과의 연계를 갖기도 하였다. 이렇게 50년대 말 또는 60년대초에 미국이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정착하였거나 주로 해외활동을 통해 추상작업을 해온 작가들도 추상표현주의적 화풍을 보여주는데 이는 국제적인 흐름이 그러했으리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김보현, 방혜자, 전성우, 이수재처럼 해외에서 구미식의 추상표현적 화풍을 정립해나갔던 작가 등 대단히 많은 작가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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